보길도 윤선도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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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윤선도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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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속의 낙원 고산 윤선도 원림

고산은 보길도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하여 부용동이라 이름 지었다.

그는 우선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조그마한 세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짓고 

기거했다. 그는 85세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보길도의 곳곳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짓고 자신만의 낙원인 부용동 정원을 가꾸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부용동 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거처하는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과 그 맞은편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주변, 그리고 부용동 입구에 있는 놀이의 공간이라 할 세연정 주변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자신의 낙원에서 마음껏 풍류를누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소박한 생활을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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